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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2월 4일 수요일

국내에서는 구하기 힘든 - 마법진 구루구루(魔法陣グルグル)

마법진 구루구루(魔法陣グルグル)


92년부터 연재된 에토 히로유키(衛藤ヒロユキ)의 16권 완결의 작품입니다.

용자와 마법사라는 정통적인 RPG의 파티 구성으로 부활한 마왕을 봉인하기 위한 여행을 하는 작품이지만 마왕을 물리치는 용사의 일행 답지 않게 작품 전체에서 피를 보는 일없이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작품의 시작에서 보이듯이 드래곤 퀘스트(DQ)류의 용사물에 대한 패러디로 시작된 작품(아버지는 용사가 되고 싶었지만 마왕이 없었기 때문에 용사가 되지 못했다고 마왕이 있는 시대에 대어난 아들을 부러워 하면서 아들을 모험을 떠나라고 떠밉니다.)이기 때문에 설명과 상태 설정 창이 등장합니다. 하지만 마왕과의 전투에서 용사 니케의 레벨은 7이었고 마법사 쿠루리는 13인 것으로도 알 수 있듯이 레벨이라는 것이 거의 의미가 없이 사실 유머를 위한 설정으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기존의 용사물에 대한 패러디들과 독특한 감각의 유머가 돋보이는 작품으로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꽃의 여왕을 만났을 때 여행자와 북북노인의 합동공연(?)과 그 설명은 정말 잊기 어려운 기억입니다.

후반으로 가면 그러한 유머가 패턴화되는 경향을 보이지만 중후반까지 진행되는 독특한 유머 감각은 용자물을 접해보았거나 일본풍의 RPG작품들을 좋아한다면 웃을 수 있는 장면들로 가득합니다.

헷갈리는 주제 - 칠석의 나라(七夕の国)

칠석의 나라(七夕の国)


이와아키 히토시(岩明均)작가의 기생수의 후속편입니다. 작품자체가 4권 완결의 단편이기 때문에 내용 자체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을 보고나면 이 작품의 주제가 과연 환경에 대한 이야기 인지 종교에 대한 이야기 인지 조금은 헷갈립니다.

주인공의 능력을 이용한 이야기가 중심이지만 사실 그 능력의 중심이 되는 곳에서는 그 능력이 종교화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나을 사람들의 맹목적인 믿음이나 현실에서 도달하지 못하지만 선택 받은 자만이 볼 수 있고 갈수 있고 보내줄 수 있는 이상향이라는 것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유일신 사상을 가지고 있는 종교의 뼈대를 보는 느낌입니다.


하지만 주인공이 공존을 택한 것으로 보이는 것이나 중간 중간에 보이는 분위기는 우리가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다른 존재들과의 공존을 말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전작에서 이러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 것을 생각해보면 종교나 이상향과 같은 것들에 대하여 말하려고 했다고 개인적으로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판단도 읽는 독자의 몫이지만 장편으로 만들었어도 대작이 될 텐데 너무 적은 분량 안에서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하려고 한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있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 다시 찬찬히 생각을 해보니 다르게 생각을 해본다면 가지고 있는 능력에 대한 활용에 대한 작가의 생각이 들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능력을 보이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능력을 이용하는 것이 목표라는 생각을 말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드네요.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종교적인 느낌이 더 강하게 느껴집니다.

일본 바둑계의 희망 - 고스트 바둑왕,히카루의 바둑(ヒカルの碁)

고스트 바둑왕(ヒカルの碁)


원작이 홋타 유미(ほったゆみ) 그림은 오바타 타케시(小畑健) 감수는 프로 바둑 여류 기사인 우메자와 유카리(梅澤由香里)가 담당한 작품입니다. 98년부터 연재되었으며 23권으로 완결되었습니다.

주인공 신도우와 라이벌 토우야가 성장해 나가는 것이 이야기를 끌어가는 주 내용입니다. 그야말로 정통의 소년물이지만 둘이 자신의 실력으로 겨루게 되는 것은 17권에서나 나오는 작품입니다.


일본에서는 청난 인기를 끌어서 이 작품으로 프로기사에 입문한 사람이 생겼고 일본의 바둑 인구를 상당히 늘리는 데 공헌하여 이 때 프로에 입문한 기사들을 '히카루의 바둑 세대'라고 부를 정도입니다. 그렇지만 사실 그렇게까지 일본에서 반향을 불러일으킨 작품은 아니었고 사실상 쇼기(일본식 장기)만 있는 것이 아니구나 하는 정도의 인식전환은 가져온 듯합니다.


사실 국내에 발매되었을 때 고스트 바둑왕이라는 제목에서 완전판을 발매 할 때는 일본판과 동일한 제목인 히카루의 바둑으로 발매하였습니다. (사실 일본 바둑계는 00년대 들어서면서 한중일의 삼파전에서 완전히 탈락했다고 보는 편이 좋을 정도니까요. 90년대에는 유명한 바둑인들이 있었지만...)

중간 중간에 프로 기사에게 감수를 받았다고 보기에는 어려운 형태의 바둑이 종종 보입니다. 고전적인 정석을 이용해서 당대의 프로기사들과 대등하게 겨루는 것을 보면 확실히 후지와라 사이(藤原佐為)가 강한 기사라는 건 확실 한 듯합니다.

사람 답다는 것 - 견신(犬神)

견신(犬神)


이 작품은 제목에서부터 강한 일본의 분위기가 나는 작품이고 내용 자체나 배경역시 그러합니다하지만 이 작품이 말하는 것은 현대인의 공통적인 생각일 수도 있는 인간성의 상실에 대한 내용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생수와 비슷한 느낌이라는 사람이 많은 것은 이런 유사한 주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기생수가 인간의 존재 의미에 대한 의문이었고 인간이기 때문에 벗어날 수 없는 근원적인 한계에 대하여 말하는 작품이었다면 이 견신은 생명의 나무를 모티프로 하여 인간의 정의와 인간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초월적인 행동에 대하여 말하는 작품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둘의 주제는 사실 크게 다르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기생수에 비하여 견신의 길이가 길어서인지 후반으로 갈수록 초반에 보였던 흡입력이 떨어지면서 초반과는 많이 달라진 분위기로 이야기가 흘러가지만 이러한 주제의 연결이라는 면에서는 큰 문제는 없다고 생각합니다특히 23과 후미키의 우정에 대하여 길게 그리고 자세하게 표현한 점은 결말을 위한 복선으로써 훌륭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생각한 주제에 따르면 23이 후미키와 함께 그러한 선택을 하게 된 것은 23이 누군가에게 받은 명령에 충실한 견신이라는 정체성에서 벗어나서 인간의 정체성을 가지게 되었다고 보아야 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자세한 묘사는 꼭 필요한 사항이었다고 생각합니다

2013년 12월 3일 화요일

보다보면 미소가 지어지는 - 요츠바랑!(よつばと!)

요츠바랑!(よつばと!)


あずまんが大王으로 유명해진(뭐 동인 지에서는 다른 이름으로 유명했으니까요아즈마 키요히코(あずま きよひこ)의 작품으로 03년부터 부정기 연재중인 작품입니다.



기본적으로 부녀의 교외 생활을 그린 작품이지만 보는 내내 미소를 띠우게 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작품입니다. 제목이 요츠바인것이 각 편의 부제가 요츠바랑 무엇무엇이라는 식으로 제목의 시작을 매번 동일하게 하기 때문에 주인공의 이름에서 딴 요츠바인지 아니면 보고 있으면 이런 아이가 내아이로 있으면 행운으로 느껴지겠다 싶어서 요츠바인지 모르겠습니다.




분류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일상물인지 치유물인지 가지고 이야기하기도 합니다만 개인적으로 음악이나 소설이나 만화 같은 작품들에서 장르를 나누는 건 왠지 평론가들이 자신의 일이 없어 질까봐 뭐라도 해야 하니까 하는 말 같아서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습니다만 오래간만에 자신의 어린 시절이 생각이 나면서 그때는 그랬지 하기도 하고 그땐 왜 그랬을까 하면서 읽다가 보면 마음어딘가가 포근해지면서 나도 아직 이런 마음이 남아 있었나 보다.’라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개인적으로는 우유를 가져다 주기위해 자전거여행을 떠나는 편이 가장기억에 남고 귀엽게 느껴졌네요)



작가인 아즈마씨가 단행본을 발매하기 전에 연재분에서 수정하여 발매를 하기 때문에 단행본의 그림이 뛰어나고 이를 위해서 단행본 발매 전에는 휴재에 들어가곤 합니다10년이라는 기간 동안 단행본을 12권을 내면서 이제야 가을분위기가 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요츠바를 다섯 살이게 하고 싶었다단지 그러기 위해서 시간이 안 가는 것처럼 하기는 싫었다.’고 한 걸로 보면 아직 동심을 가지고 있는 요츠바를 한동안 기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013년 11월 30일 토요일

판타지 성장소설 - 바람의 마도사

바람의 마도사

국내 작가로는 처음으로 국내에 출판된 판타지소설로써 그래서인지 독자적인 세계관이 설정된 작품입니다. 하지만 정확하게 이 작품을  말한다면 판타지의 설정을 사용한 성장소설로 보이기 대문에 과연 이 작품을 최초의 판타지 소설로 보아야 하느지는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작품 자체의 문제로는 전반적으로 과장된 묘사와 정리되지 못한 문체가 문제입니다만 당시 작가가 어린 나이임을 감안한다면 나쁘지 않은 수준입니다.

작품 자체가 성장 드라마인 만큼 주인공의 심리상태(자신의 주변에 일어나는 모든 일이 자신의 탓이라고 생각하거나 자학적인 자기비하에 자살기도까지 합니다.)에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작품에 대한 평가가 후한 편이고 공감을 하지 못한 경우에는 평가가 박한 편인 작품입니다.

결말역시 관점에 따라 행복한 결말인지 불행한 결말인지 다양하게 생각할 수 있는 열린 결말을 택하고 있는데 이 결말이 후속작인 2부에 가서도 명확하게 나오지 않기 때문에 더욱 궁금한 느낌이 있는 작품입니다.

비슷한 시기에 일본의 애니메이션에서 신지라는 희대의 캐릭터가 등장했기 때문에 그 영향이 있는 것이 아니냐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국내에서는 90년대 후반에서야 일본 애니메이션을 복사해서 판매하는 가게가 늘어났다는 점을 생각해볼 때 당시 검정고시 준비생이었던 작가가 그렇기에는 힘들지 않을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