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도오
처음에는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지만 학교에서 강제로 시키던 자율학습시간에 선생님들의 눈을 피해서 읽을게 필요해서 잡은 짧은 3권 완결의 책이었습니다. 당시 무협지들은 천편일률적인 전개인지라 대강의 내용도 정해져 있었는데 1권에서 집안이 망하고 2권에서 힘을 얻고 3권에서 수련한 후 나와서 얼렁뚱땅 원수를 갚는 내용이 대부분인지라 사실 3권짜리 책에는 손을 대지 않았지만 인연이었는지 아니면 누군가가 볼까 싶은 작품들의 사이사이를 대출해가서 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 첫 만남이었습니다. 사실 다른 3권짜리를 어쩔 수 없이 보야 할 때는 2권까지만 빌리는 것이 당시 학교에서의 유행이었는데(3권 내용이 뻔하니까 그랬었지요) 3권까지 빌린 것도 이상한 일입니다.
이 대도오는 이랬던 저의 생각을 바꿔놓은 작품이었습니다. 태극문에서 그 조짐이 보이던 신무협이라고 불리게 되는 작품 분야를 드디어 나누게 될 만한 작품이었습니다. 전술한 것과 같이 기존의 무협지의 어디에서 떨어지면 전대의 기인의 무덤이거나 영물이 있거나 하는 황당무계한 이야기를 벗어나서 그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표현했기 때문에 당시에 무협지좀 읽었다는 축에 속하던 사람들에게는 충격적인 작품이었습니다.
사생아라고 태연히 자신의 출생을 밝히는 대도오, 명문 출신이지만 겁이 많은 매봉옥, 끝까지 자신을 보여 주지 않은 노대와 같은 밑바닥 인물만이 아니라 철기맹을 살리려고 애쓰는 운기려와 같이 여러 계층의 개성 있는 등장인물들은 각자 나름대로 가지고 있는 삶의 문제 때문에 힘겨워 하면서 앞으로 나가기 위해 어쩌면 그 무게에 눌리지 않기 위해 발버둥 치는 모습들이야 말로 이것이 신무협이라고 말하는 듯 하는 작품이었습니다.
사실 어떤 무협지나 판타지가 황당하지 않은 작품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하지만 기존의 무협의 황당함을 넘어선 그야말로 공장에서 찍듯이 나오며 스스로 망조가 들어가던 매너리즘에 빠진 구무협에 비하여 지금 살아가고 있고 앞으로 살아가게 될 삶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들이기 때문에 공감을 얻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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